머리말
국어사전을 펼쳐 보니 유머(humor)는 해학, 익살, 품위있는 재담이라고 한다. 해학(諧謔)이란 무엇인가? 익살스러우면서 풍자적인 농담이 아닌가. 조크(joke) 역시 농담, 장난, 익살이다.
어떻든, 잘 다듬어진 한 편의 조크는 무척 통쾌하다. 위선적 도덕이나 감성적인 휴머니즘, 형식적인 종교, 부폐한 정치, 조크의 화살은 인간이 펼쳐 놓은 이와 같은 온갖 방벽을 표적으로 한다.
조크는 편재하는 제악(諸惡)의 정황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과 호응하며,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울분, 공포, 염원이야말로 늘 조크의 핵심이고 주제(主題)였다.
욕구 불만, 질투 등의 정염(情念)을 원동력으로 인간은 강력하고 파괴적인 조크와 유머를 수많이 탄생시켜 왔다. 그것은 미덕(美德)을 더럽히고, 양식을 야유하며 일체의 악법과 위선의 벽을 가볍게 뛰어 넘어, 인간과 인간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용서 없이 파헤쳐 서민의 웃음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때로 사람의 마음을 맹렬하게 뒤흔들거나 과거, 심지어는 역사까지도 요동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중국의 저명한 문필가이며 사상가인 루쉰(1881∼1936)은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는 한 그 가슴 속에 약간의 울분이 잠재해 있기 마련이며 웃음의 간판을 빌려 크게 하하하! 웃음으로 그것을 뱉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웃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만국의 법률에도 국민은 언제나 반듯이 찡그린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했다.
늘 웃고만 지낼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세상사가 어디 그리 순탄하기만 한가. 인간이 살아나가는 과정에는 온갖 장애와 시련이 지뢰처럼 깔려 있어 변뇌와 좌절을 곱씹게도 하니, 아마도 인간은 웃고 사는 날보다 찡그리고 사는 날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된다.
큰 난관에 부딪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그마한 시련에도 어찌할 바 모르고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다. 저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무튼 명랑한 일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거뜬히 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보약이란 말을 새삼 명심하게 된다.
돌연한 병마와 투병하면서 나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동서양의 여러 조크집을 읽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우리 정서와 비교적 어울릴만한 것만 추려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 작은 웃음이라도 전해 줄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내 소망이다. 행운을 빈다.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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